𝙇𝘼𝙓 𝙒𝙄𝙆𝙄
최근 변경
최근 토론
임의 문서
도구
최근 변경
카우스만 침공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개요 == > 우리는 왕을 위해 상륙했다. 그런데 그 해안에는 왕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 > 자히르 여단 생존자 굴람 R. 나지미, 1994년 회고 1979년 7월 [[루이나]] 군정의 지원을 받은 [[고랜드]] 왕당파 망명자 부대가 고랜드 북부 연안의 카우스만에 상륙해 인민민주당 공산 정권의 전복을 시도했다가 나흘 만에 전멸한 사건. 루이나 측 작전명은 HARROW였다. 작전은 1978년 루이나 군정을 세운 국가비상위원회와 [[NIA]]가 1979년 3월의 헤라트 반란을 공산 정권 붕괴의 신호로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폐위된 바티스타 왕가의 지지자 1,400여 명이 당시 웨스타시아의 괴뢰국이던 [[유고랜드]]의 남부 사막에서 훈련을 받았고, 상륙과 동시에 해안에 왕국 임시정부를 세워 북부의 봉기를 이끌어 낸다는 것이 계획의 골자였다. 그러나 왕당파의 지지 기반은 바다가 없는 남부의 부족 지대였고, 상륙할 수 있는 해안은 왕가를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북부에만 있었다. 계획은 웨스타시아를 통해 사비에트로 새어 나갔고, 방어를 지휘한 부총리 피델 성베르트는 상륙군을 해안의 습지에 가둔 채 나흘 만에 섬멸했다. 작전의 실패는 고랜드 현대사의 방향을 바꾸었다. 승리로 명성을 얻은 성베르트는 두 달 뒤 타라키를 죽이고 권력을 잡았고, 루이나가 다시 고랜드에 손을 뻗으리라고 확신한 사비에트는 그해 12월 [[사비에트-고랜드 전쟁|고랜드 침공]]을 결정했다. 1980년 헌정을 회복한 루이나는 이 실패를 교훈 삼아 직접 작전 대신 유고랜드를 거쳐 무자헤딘을 무장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카우스만 침공은 루이나 정보 공작 사상 가장 참혹한 실패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27.0.0.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닫기
Liberty
|
the seed